[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돈이 먼저냐, 삶이 먼저냐?

_(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 2012/08/16 | 사회적경제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살림/살이 경제학은 큰 차원에서는 나라 경제, 세계 경제를 조직할 수 있는 원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다. 살림/살이 경제학은 ‘(남을) 살린다’와 ‘(내가) 산다’는 두 뜻을 겹쳐 놓았다. 이 말을 만든 사람들은 남을 살리는 것과 내가 사는 것을 구별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본래 그 자체가 함께 산다는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남을 살리는 것과 내가 사는 것이 불가분으로 엮여 있다.

2부: 살림/살이와 돈벌이의 관계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 ② 돈이 먼저냐, 삶이 먼저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로 돌아가 본다. 그가 크게 강조했던 살림/살이의 원리 하나는 목적은 무한하며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정확하게 규정되는 유한한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젊은이들이 오늘 밤 우르르 모여 화끈하게 한번 놀아 보겠다는 굳은 결의를 품고 홍대 앞 모 클럽에 집결했다고 하자. 이들의 목적은 ‘청춘을 불사름’일 것이며, 그에 맞는 수단은 불사름에 필요한 ‘일정한 불쏘시개와 연료’일 것이다. 날이 새도록 이 목적의 추구는 실로 무한할 것이다.

하지만 수단은 전혀 무한히 필요치 않다. 필요한 수단은 오로지 일정량의 알코올, 팬시한 조명, 확실한 음향과 시크한 디제이면 충분하며, 기껏해야 (법을 무시하기로 했다면) 모종의 약초 혹은 화학물질 정도뿐이다. 게다가 이 수단들의 양도 무한히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에 필요한 딱 그만큼만 있으면 된다.


photo, ⓒ from Flickr> juanpablo192

 

마지막에 든 그 ‘모종의 화학 물질’을 예로 들어 보자. 인간들은 이 화학물질로 신나게 놀기, 잠들기, 수술을 위한 마취, 목숨 끊기 등의 다양한 목적에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때 중요한 것은 그 목적에 따른 수단의 ‘정확한 양’이다. 이를 무시하고 무작정 많이 쓰거나 덜 쓰거나 해 보라. 이 밤을 불사르러 모인 불온한 청춘들이 밤새 숙면을 취하고 일찍 일어나 건전하게 직장으로 출근하게 될 수도 있다. 또 수술대 위의 환자가 영면(永眠)에 들어 수술 자체가 불필요하게 될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돈벌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붙인 경고는 이 목적 수단의 전도이다. 만약 돈이 목적이 된다면? 본래 돈이란 ‘좋은 삶’의 수단이라는 것은 자명하며 따라서 누구나 필요한 만큼의 돈이란 정해져 있을 것이지만, 돈이 목적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면 앞의 원리에 따라 목적은 무한하므로 벌고자 하는 양의 돈은 무한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말로 위험시했던 것은 단지 이렇게 한없이 돈을 벌고자 하는 물욕 말고도 또 있었다. 본래 삶의 목적 그 자체로서 추구되어야 할 인간의 각종 활동이 그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 버린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예술가도 공무원도 선생님도 목사님도 노동자도 자신의 활동을 그 자체로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한없이 노력하는 일을 멈추고, 앞의 원리에 따라 돈벌이라는 목적에 필요한 딱 그만큼만 추구하고 말 것이며, 이로써 인간 활동의 질은 계속 추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photo, ⓒ from Flickr> HikingArtist.com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돈 버는 데에 수단이 되는 삶 말고는 삶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수단의 양은 목적이 결정한다.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수단은 버려지게 돼있다. 그래서 돈을 버는 데에 직간접으로 연결되지 않는 삶은 마찬가지로 방기된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오로지 ‘돈을 벌고 쓰는 삶’이 남게 된다. 결국, ‘삶의 총량’이 줄어든다.

여기에서 살림/살이 경제의 중요한 핵심 원리 하나를 얻게 된다. 개인이든 집단 차원이든 모든 종류의 인간 활동에 있어서 그것이 목적으로 삼는 바가 무엇이며 거기에 들어가는 수단은 무엇인가, 그리고 필요한 수단의 정확한 양은 무엇인가의 관계를 분명하게 확립하는 것이다.

이 말은 너무나 심상하고 진부한 명제 같지만 실제 인간 세상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1993년 우리나라에서는 한강 다리 하나와 강남 최대의 백화점 건물 하나가 순식간에 내려 앉아 무수한 인명까지 잃는 황당한 사태가 터진 바 있었다. 과연 그 구조물들의 건설과 관리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들이 방금 말한 목적 수단 관계를 제대로 명심하고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가?

그 반대가 돼 엉뚱한 것을 목적으로 삼아 버리고 정작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을 수단으로 삼아 버린 것이 아닌가? 개인의 삶에서도 그러하다. 우리가 중요하게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인지를 명확하게 의식하고 살고 있을까? 그 반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 결과 ‘삶의 총량’은 계속 줄어드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전문은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지식의날개 펴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신들께서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감추어 버렸으므로······
– 헤시오도스, ⌜신통기⌟ 97:42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돈벌이 경제학’에 찌든 사고 방식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을 내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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