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달리면서 깨달은 사실과 지혜 – ④ 맨 처음 인간으로 돌아가자
월화수목금 닷새 중 네 번은 술을 마신다. 술약속이 있으면 있는 대로 마시고, 없는 날에는 나처럼 없는 사람을 찾아 마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다른 책상을 오가며 근무한 뒤 저녁에는 술상을 앞에 두고 시간을 보낸다. 에너지는 점심 시간 밥상과 저녁 때 술상에서 채운다. 운동 초과 에너지 섭취는 금세 지방으로 바뀐다. 나잇살은 어쩔 수 없다고 둘러대지만 결국 핑계일 뿐이다.
때로는 마음 편한 금요일에 술을 주량에 비해 많이 들이붓는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울렁인다. 그런 토요일 아침에도 나는, 다른 일정이 없으면, 달리러 나간다.
혼자라면 토요일 아침마다 달리지 못했을지 모른다. 피곤한 몸을 끌고 집을 나서는 데에는 함께 달릴 동호회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리라는 생각이 힘이 된다. 가끔 동호회 문화가 한국의 독특한 토양이자 에너지의 원천이 아닐까 하고 상상한다. 동호회는 서로 북돋워주고 그 분야 정보를 나누고 경쟁하면서 함께 가서 좋다.
나는 왜 심신이 녹초가 된 토요일 아침에도 뛰러 나가는가? 동호회 사람들에게 이끌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달리기는 내게 운동 이상의 행위다. 달리기는 내 가라앉은 몸과 마음을 원래 상태, 축 늘어지기 전 상태, 엉키기 전 상태로 되돌려준다.
사람의 몸은 의자에 앉아서 지내도록 만들어진 장치가 아니다. 인체는 뛰고, 달리고, 걷다가 또 달리도록 만들어진 기계다. 영장류 중 그런 변이가 일어난 갈래가 생태계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고, 오늘날 인류의 선조가 됐다.
일주일 내내 앉거나 누워서 지내는 것은 우리 몸을 설계 의도와 달리 부리는 일이다. 네 다리로 하중을 지탱하도록 만들어진 의자를 옆으로 눕혀두고 그 위에 앉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자는 연결 부위가 약해지고 변형되게 마련이다.
달릴 때 왜 팔을 흔들까?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가 유산소운동이자 전신운동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뛸 때엔 주로 다리 근육을 쓴다고 생각한다. 맞지만 정확한 지식은 아니다. 달리기는 상체의 움직임을 척추를 통해 다리로 연결하는 동작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이 사실을 단박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먼저 걷는 동작에서 팔이 왜 흔들리는지 생각해보자. 걸을 때엔 체중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계속 왔다갔다 한다. 몸은 앞으로 가지만 위에서 내려보면 하체는 척추를 축으로 마치 운전대처럼 좌우로 반복해 움직인다. 하체 회전은 척추를 통해 상체로 연결된다.
인형의 다리를 잡고 수직축 삼아 돌리면 팔이 다리와 반대 방향으로 흔들린다. 관성이 작용한 결과다. 팔이 흔들리는 것은 그러나 다리의 동작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동작만은 아니다. 팔을 상체에 붙이고 걷는다고 상상해보자. 팔이 다리에 호응해 움직일 때에 비해 부자연스럽고, 그렇게 걸으면 효율도 떨어지겠구나 하는 판단이 든다. 팔을 붙이고 걸어가려고 하면 몸은 자연스레 어깨를 움직여 비슷한 효과를 얻으려 한다.
걷는 동작은 다리만 놀려서 이뤄지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팔에 힘을 빼고 걸으면 팔은 자연스레 흔들린다. 속도를 높이려면 팔을 더 기민하게 다리의 움직임에 맞춰야 한다.
달리기는 걷는 속도를 높인 운동이 아니다. 달리기와 걷기는 종류가 다른 운동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쉬운 사례가 있다. 매일 많이 걸어도 달리기는 하지 않는 사람이 들려준 얘기다.
“모처럼 달렸더니 다음날 다리 근육이 뻐근한 거야. 걸을 때는 아무리 오래 걸어도 멀쩡한데. 걸으면서는 쓰지 않는 근육을 달릴 때는 사용한다는 얘기 아니겠어? 달리기는 걷기와 다르다는 거지.”
팔을 젓는 동작도 걷기와 달리기는 달라진다. 운동 종목으로 걷기는 경보가 있다. 경보는 경기 내내 어느 한 발은 땅에 디디고 있어야 한다. 두 발을 다 땅에서 떼면 반칙이다. 반면 달리기는 상당 기간 두 발이 허공에 떠 있다. 몸이 땅에 붙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팔을 힘차게 저으면 다리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나타날까.
앞에서와 반대로 인형의 머리와 상체를 잡고 수직축 삼아 돌리면 다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달릴 때 몸이 뜬 상태에서 예컨대 오른팔을 뒤로 젓는 동작은 척추를 통해 오른쪽 골반 아래를 앞으로 내밀도록 도와준다. 왼팔을 뒤로 저으면 왼쪽 골반 아래가 회전하며 앞으로 나온다. 팔을 힘차게 치고 피치를 올릴수록 빨리 달릴 수 있는 이유다. 달리기는 다리만의 운동이 결코 아니다.
마라톤은 극한에 닿는 운동이다. 한 걸음에 1m를 전진한다고 하더라도 42km 넘게 달리려면 4만2000번 넘게 발을 디뎌야 한다. 한쪽 발은 2만1000번 넘게 땅을 박차야 한다. 팔 젓기도 왼쪽 오른쪽 각각 2만1000번 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상체를 단련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나는 마라톤 입문 초기에 완주할 때마다 어깨와 목 부분이 뭉쳤다. 팔을 젓는 근육을 충분히 강하게 만들어놓지 않은 탓이었다. 팔굽혀펴기를 꾸준히 한 다음 출전한 대회에서는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척추 건강을 달리면서 챙긴다고?
잘 달리려면 관련된 상체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는 얘기는 그러나 이 글의 곁가지다. 본론은 척추의 건강이다. 달릴 때 팔을 저어 다리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척추를 축으로 이뤄진다. 걸을 때 다리를 움직이면 팔이 흔들리는 동작 또한 척추가 축으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역할은 달릴 때와 비교하면 크지 않다. 달리는 동안, 특히 몸이 체공하는 동안 척추의 디스크는 수직 압력을 벗어나 회전 운동을 한다. 의자에 앉아서, 서서 지내면서 S자 라인에서 벗어났던 디스크가 제자리를 찾는다.
달리기는 몸을 설계된 대로 쓰는 과정이다. 기계를 설계에 따라 가동하면 성능이 잘 발휘될 뿐 아니라 수명도 길어진다. 기계는 윤활유나 냉각수를 정기적으로 갈아주고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 반면 몸은 무리하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 근육, 뼈, 관절 모두 달리는 동안 단련된다. 척추도 강해진다. 달리기는 우리 몸을 설계에 따라 씀으로써 최적으로 올려놓는 과정이다.
달리기로 얻는 효험이 척추에 그치지 않음은 더 쓰지 않아도 되리라. 앞에 올린 글을 참고하시라. 몸과 마음을 타고난 상태로 되돌리고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데엔 맨발 달리기만한 운동이 없다. 맨발 달리기가 꺼려지는 분에게는 맨발 줄넘기를 권해드린다. 청소년 자녀에게 맨발 줄넘기를 시키면 성장판이 자극되고 잠을 깊이 자며, 숙면할 때 성장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된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간다고,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고 한다. 이 말은 사회적인 의미에서 쓰인다. 돈과 권력에 집착하기보다는 비우고 떠나라는 권고다.
맨발로 왔다가 맨발로 간다
개인으로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맨발로 왔다가 맨발로 간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자로 쓰면 나족래 나족거(裸足來 裸足去)쯤 되겠다. 나는 맨발로 태어난 우리는 일과 중 일정 시간은 맨발로 지내야 하며, 특히 맨발로 뛰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인류는 달리도록 설계된 인체를 타고 나지만 자기 몸을 설계된 대로 쓰는 사람의 비율은 매우 낮다. 평생 거의 뛰지 않고도 의학 덕분에 평균수명을 누리는 사람이 많다. 발이 고장나면 고치면 된다. 척추가 틀어져도 수술을 받으면 된다. 약해진 심장도 수술로 치료 가능하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인류의 평균적인 건강과 체력이 저하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약해진 인체는 부상과 질병에 취약해지지만 의학이 받쳐준다. 인류는 몸이 약해지는 가운데 의학에 의존해 수명을 연장하는, 악순환도 아니고 선순환도 아닌 이상한 순환에 빠졌다. 이 순환에서 탈출하려면 뛰어야 한다. 신발을 벗고 달려야 한다. 맨 처음 인간으로 돌아가자.

등록정보 : 서울 아02085 | 등록일 : 2012년 4월 20일 | 발행인/편집인: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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