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살림/살이 경제학은 큰 차원에서는 나라 경제, 세계 경제를 조직할 수 있는 원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다. 살림/살이 경제학은 ‘(남을) 살린다’와 ‘(내가) 산다’는 두 뜻을 겹쳐 놓았다. 이 말을 만든 사람들은 남을 살리는 것과 내가 사는 것을 구별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본래 그 자체가 함께 산다는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남을 살리는 것과 내가 사는 것이 불가분으로 엮여 있다.
1부: 돈벌이 경제 VS 살림/살이 경제 – ② 살림/살이 경제와 돈벌이 경제
살림/살이 경제는 이렇게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정신적·물질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유형·무형의 수단을 조달하는 행위
그야말로 우리말 살림/살이 그대로의 뜻이며, 이것이 경제라는 말의 뜻이라고 해도 아무도 반대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막상 경제학 교과서나 사전을 찾아 보면 전혀 다른 방향의 정의가 튀어 나온다. 먼저 루트리지(Routledge) 출판사에서 나온 경제학사전의 ‘경제(economy)’ 항목을 찾아본다.
1. 시장 질서
2. 한 집합의 교환 행위들
3. 동일한 통화를 사용하는 나라의 경제 활동들 전체
4.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원의 알뜰한 사용
여기에는 돈벌이와 관련된 관념들만이 나오고 있을 뿐, 그자체로 인간의 살림/살이와 관련되어 있는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이러한 정의의 기초가 되는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대학에서 사용하는 경제학 교과서들을 찾아본다. 경제원론이든 미시경제학이든, 어느 책이라고 할 것 없이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시작한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며 주어진 자원은 항상 부족하다. 이러한 ‘희소성’의 상황으로 인하여 인간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자원 활용의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이 바로 경제다.
즉 ‘경제화(economizing)’ 행위로 이루어지는 인간들의 상호 작용이 바로 경제라는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이 정의를 뜯어보아도 여기에서 위에 정식화한 바의 살림/살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정의를 위의 살림/살이 경제의 정의와 비교할 수 있도록 조금 바꾸어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닥치게 되는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알뜰하게 선택하는 행위
좀 안된 이야기지만, 나의 경우 이러한 정의를 보았을 때 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고스톱이다. 명절 때마다 둘러서 쭈그리고 앉아 골똘히 고민하는 아저씨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바로 이러한 ‘선택’이니까.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나가보면, 과연 이 정의가 ‘경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가 의문스러워진다. 왜냐면 이 정의는 ‘소기의 목적을 거두는 데 있어서 가장 알뜰하게 수단을 절약하는 선택’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에서 나타나는 행태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경제학 교과서에서의 경제의 정의는 사실상 이미 ‘화폐’의 개념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화폐의 개념이 없으면 전혀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여러 다른 수단으로 여러 다른 목적에 적절히 배분할 선택을 한다는 것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첫째, 여러 다른 목적들의 가치와 쓸모를 서로 비교한다는 것, 또 여러 다른 수단의 가치와 희생을 비교 한다는 것은 모두 동일한 수량으로 바꾸어 놓았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스키장에 가서 백설 위의 청춘을 만끽할 것인가 골방에 처박혀 책이나 읽을 것인가? 스키장의 청춘과 골방 책벌레의 기쁨은 양적인 비교가 불가능한 즐거움이다. 이를 가상의 효용 단위인 ‘유틸(util)’로 환원하든 아니면 달러 가치로 환원하든 어떻든 동일의 수량적 단위로 환원해야 한다. 이러한 필요는 수단의 상호 비교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일이다.
둘째, 수단이 여러 목적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야 위의 경제의 정의가 의미를 가지게 된다. 바이올린으로 배를 불릴 수는 없고 장미꽃으로 귀를 즐겁게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비록 수단들의 가치와 희생의 크기를 동일한 수량으로 환원한다 한들, 바이올린, 장미꽃, 성경책, 연예인 사진 등 가지각색의 수단으로 구성된 ‘수단 바구니’를 들고서 이런 저런 목적에 아무렇게나 배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것이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수단’들은 다 충족시킬 수 있는 목적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무 목적이나 다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이란 모든 마법을 다 뚝딱 해치울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나 니벨룽겐의 반지 같은 전설의 물건들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도 이 도깨비 방망이나 니벨룽겐 반지에 해당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돈’이다.
마르크스가 인용하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처럼, 돈은 사실상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목적을 다 달성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위의 두 번째 경제의 정의가 보편적인 인간 활동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사실상 그 ‘수단’이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정의에는 사실상 돈의 개념이 잠재되어 있고, 또 그렇게 돈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삽입한다면 최소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경제’라고 느끼는 것의 일단을 훌륭하게 묘사하는 정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돈을 매개로 한 두 개의 층위로 다시 나누어질 수 있다.
첫째, 현실에 존재하는 가지각색의 인간 활동과 유형·무형의 자원을 ‘수단’으로 보아 이를 ‘돈벌이’라는 목적에 맞게 가장 현명하게 배치하는 선택이 있다. 둘째,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수단’으로 보아 여러 ‘목적’에 배당하는 선택이 있다.
첫 번째 과정을 보통 ‘생산’이라고 부르며 두 번째 과정을 보통 ‘소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두 번째 과정의 여러 ‘목적’ 가운데 또 다시 ‘돈벌이’가 들어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를 우리는 ‘투자’라고 부르며, 전체 과정은 돈벌이라는 ‘목적’에 맞게 돈이라는 ‘수단’을 적절히 배치하는 활동이 되기도 한다. (이를 자산 선택, 즉 ‘포트폴리오’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를 묘사하는 중요한 개념들이 비로소 속속 도출되기에 이른다.
결국, 이 두 번째 정의는 돈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넣었을 때 비로소 경제의 개념이 될 수 있으며, 그 ‘선택’의 관점도 최소한의 돈을 써서 최대한의 만족과 또 추가적인 돈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간략하게 줄여서 말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 두 번째 정의에서 묘사되는 경제는 ‘돈벌이 경제’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전문은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지식의날개 펴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신들께서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감추어 버렸으므로······
- 헤시오도스, ⌜신통기⌟ 97:42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돈벌이 경제학’에 찌든 사고 방식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을 내는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