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살림/살이 경제학은 큰 차원에서는 나라 경제, 세계 경제를 조직할 수 있는 원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다. 살림/살이 경제학은 ‘(남을) 살린다’와 ‘(내가) 산다’는 두 뜻을 겹쳐 놓았다. 이 말을 만든 사람들은 남을 살리는 것과 내가 사는 것을 구별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본래 그 자체가 함께 산다는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남을 살리는 것과 내가 사는 것이 불가분으로 엮여 있다.
1부: 돈벌이 경제 VS 살림/살이 경제 – ① ‘돈 사러 간다고?’ 생계 경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살림/살이 문제를 너무나 쉽게 돈벌이 문제와 동일시해버린다. 실제 그렇다. 요즘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지하철을 타든, 게임을 하든, 친구를 만나든, 책을 읽든, 무엇을 하든, 일정한 돈을 써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경험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극히 익숙해 있는 우리로서는 돈벌이와 살림/살이가 본래 별개의 행위요 영역이라는 말을 들으면 의아할 수밖에 없다. 돈벌이와 연결되지 않은 살림/살이도 있단 말인가?
그렇다. 돈벌이는 개인이나 집단 차원에서 살림/살이를 영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그것도 그 여러 수단 형태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돈이 많든 적든 버는 문제와 관련이 있든 없든 그것과 무관하게 고민해야 하는 살림/살이 영역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돈벌이와 무관하거나 관계가 대단히 희박한 살림/살이 형태를 실감하기 위해서 가장 극명하고도 쉬운 경제 형태부터 먼저 생각해보자.
‘돈 사러 간다고?’ 생계 경제
생계 경제(subsistence)라는 개념은 엄밀하게 정의되어 쓰이는 개념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구성원들의 물질적인 자급자족을 목표로 경제 생활을 영위하는 공동체의 경제를 일컫는 말이다.
의식주에 필요한 물자는 사냥, 채집, 농경 등의 활동으로 조달되며, 생산의 ‘잉여’가 크게 축적되지 않는 낮은 생산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살림/살이의 문제가 당연히 돈벌이의 문제와 무관하게 돌아가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재화를 농사, 길쌈, 채집, 사냥, 낚시 등으로 해결하며 문화적·정신적 생활에 있어서도 공동체 내에서 욕구와 그 충족 수단 모두가 주어지게 된다. 이들에게 있어서 경제 활동이란 돈벌이와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개인과 공동체의 살림/살이다.
이러한 상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화폐를 많이 축적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지도 않으며, 아예 자신의 경제 활동 즉 살림/살이의 여러 문제들을 돈을 단위로 하여 개선하고 사고하는 버릇조차 낯설다. 물론 우리는 산속이나 오지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원시 부족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대략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읍내에서 상당히 떨어진 벽지 산촌에 사는 이들은 일상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마을 단위에서 해결한다. 물론 이들도 근대화된 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마을 단위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종류의 삶의 수단을 조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읍내의 치과에도 가야할 때가 있고, 손주 놈이 중학교 들어가면 좋은 가방도 하나 사주어야 하며, 설이 되면 세뱃돈도 준비해야 한다. 이들은 그래서 돈이 생기면 이럴 때 쓰려고 장롱 속이나 뒤주 어딘가에 꼬깃꼬깃 박아둔다. 이게 ‘돈 구린네’라는 말이 생긴 사연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모아둔 돈이 부족하면? 호미나 낫을 하나 들고서 산으로 올라간다. 더덕이든 도라지든 또 그 밖의 무엇이든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싹싹 긁어모은다. 그래서 장이 열리는 날 그것들을 가지고서 기차 타고 (혹은 기찻삯을 아끼기 위해 이고지고 걸어서) 장에 가서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래서 돈을 구해 온다.
이런 것을 부르는 우리나라 옛날 말에 ‘돈 사러간다’는 표현이 있다. 실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팔러가는’ 것이 아니라 ‘돈 사러간다’는 것이다. ‘팔러간다’는 것은, 근대에 들어 유럽에서는 ‘실현(realize)’된다는 말로 표현되는 특수한 행위다.
즉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화폐라고 하는 성스러운 존재의 인정을 받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되느냐 마느냐 하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약‘이 벌어지는 순간이요, 베블런이 지적한 대로 실제로 존재하는 상품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존재인 화폐로 바뀌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화폐란 그렇게 신비롭거나 신성하거나 목숨을 걸고서라도 얻어내야 할 무언가가 아니다. 그저 머리를 빗을 참빗처럼, 등을 긁는 효자손처럼,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생필품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며, 장에 물건을 팔러가는 것은 바로 그런 생필품 하나를 ‘사러 가는’ 것에 불과하다. 생계 경제에 있어서 화폐와 돈벌이가 살림/살이의 한 부분으로 포괄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이렇게 잘 드러내주는 표현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생계 경제가 ‘돈벌이 경제’와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어떤 서양 변호사 한 명이 업무로 인도에 갔다가 시골길 진창에 차가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멀리서 터덜터덜 시골 버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고 있었다. 버스 안은 사람과 온갖 짐으로 꽉 차 있었고 하다못해 천장과 버스 옆에도 사람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풍경이었다.
버스의 시골 사람들은 곤경에 처한 이 서양인을 보고 모두 내려 차를 끌어내어 주었다. 서양인이 답례를 하려고 돈을 좀 꺼내들었더니 버스 운전사가 말린다.
“하지 마세요. 이 사람들은 너무 가난한 사람들이라서 돈이 필요 없답니다.”
이 풍경이 대략 1990년대 초반이었던 듯하니,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를 겪은 지금의 인도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전통적인 생계 졍제에서 화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너무나 재미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것이다.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전문은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지식의날개 펴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신들께서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감추어 버렸으므로······
- 헤시오도스, ⌜신통기⌟ 97:42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돈벌이 경제학’에 찌든 사고 방식을 성찰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을 내는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