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자활센터 중에서 모범적으로 이미용사업단을 꾸려가고 있는 노원남부지역자활센터의 ‘더불어 해피클럽’을 지난 5월 12일(토) 정호성 서울광역자활센터장이 방문했습니다.
정호성 센터장 (이하 ‘정’) : 언제부터 ‘더불어 해피클럽’이 시작됐나요?
전정림 점장(이하 ‘전’) : 가게는 작년 7월에 오픈했습니다.
정 : 아직 1년이 채 안됐는데, 단골은 많이 생겼나요? 월 매출은 얼마나 되나요?
전 : 80여 분 정도 된다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매출은 최근 2개월을 말씀드리면, 4월에는 943,000원, 5월에는 1,224,000 정도였습니다.
정 : 현재 이미용사업단은 몇 분이서 일하시나요?
전 : 7분이서 일하세요. 재가팀 2분 선생님들은 지역으로 다니면서 이미용사업을 하시구요, 5명이 2개조로 나눠져 한 조는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또 한조는 12시부터 8시, 9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세요.
정 : 재가팀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전 : 재가팀은 2분이 직접 지역을 다니면서 미용실에 오기 어려운 분들을 방문해서 머리를 손봐주는 거예요. 그러니깐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장애인, 그리고 경로당 노인들 이런 분들은 방문해서 일하시죠. 가게를 차리기 전에는 무료로 해드렸어요. 그런데 가게를 차리고 나서부터는 이분들에게 설명을 해드리고 돈을 조금씩 받고 있어요.
정 : 제가 아는 여자 분은 집은 면목동인데 불광동까지 머리하러 다니더라고요. 여성분들은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많나 봐요.
전 : 네, 여성분들은 아무래도 더 예민한 것 같아요. 저희 가게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하게 하면서도 질 좋은 약품을 쓴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는 분들은 다 아시고 찾아오시죠. 도봉구, 강북구에서 오시는 분도 계세요.
정 : 일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어떤 게 있나요?
전 : 몇 년 전 척추수술을 했어요. 그래서 계속 서 있기가 힘들죠. 3개월에 한 번 정도 통증주사를 맞고 일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 외에 아무래도 사람관계가 제일 힘이 들지요. 여러 사람들이 같이 일하다보니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죠. 우리 사업단도 몇 분이 일하시다 그만 두셨어요.
여러 사람이 일하다보면 자기 맘 같지 않은데 그걸 이해하고 참고 하시는 분은 남지만 그걸 참지 못하는 분은 그만 두는 경우가 종종 생기죠.
정 : 일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젠가요?
전 : 해 드린 머리에 대해 아주 흡족해 하실 때고요, 또 잘한다고 찾아오실 때죠.
정 : 자활에는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전 : 본래 살기는 청량리에 살았어요. 그곳에 살면서 동사무소 사회복지담당 업무보조 일을 맡아 하면서 사회복지 일에 대해 좀 알게 되었죠. 사회복지사님의 권고로 임대아파트 신청을 했고, 아이들이 여럿 있다 보니 월곡동 임대아파트에 운 좋게 배정받아 이사를 와서 살게 되었고, 자활에도 오게 되었죠.
정 : 자활에서 일해보시니 어떤가요?
전 : 정말 저희 같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이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센터에서도 저희들이 계속 기술을 익힐 수 있게끔 여성인력개발센터 같은 곳에 연계해 주시고, 지원을 계속 해주고 계세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맘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님이 없어 쉬는 시간이 되면 어떤 사람은 지루해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열심히 가발 놓고 연습하고 동영상보면서 공부하고 그래요. 저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정 : 앞으로 희망은 어떻게 가지고 계세요?
전 : 개인 창업하는 것이죠. 그래야 아이들 대학까지 보내고 집도 사고 그럴 거 아니에요?
정호성 서울광역자활센터장.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나 졸업 후 건설일용직, 식자재납품, 택시회사, 자동차정비공, 덤프트럭기사 등 20년 넘게 바닥으로 기었다. 지역운동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일자리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고 1997년 이후 자활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역신문을 만들게 된 게 계기가 되어 글을 쓰게 되었고 <생산공동체운동><자활사업실무핸드북><노숙자자활을 위한 실무매뉴얼><집수리실무><자활사업종합보고서> 등 자활사업과 관련된 책을 여러 사람과 같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