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달리기]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사람은 원래 맨발로 달렸다.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맨발 달리기의 그 자연스러움에 대해 길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은,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려한다.
3부: 달리면서 깨달은 사실과 지혜 – ① 나는 도대체 왜 뛰기 시작했나
토머스 칼라일이 말했지. ‘인생에 있어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분명한 일들을 먼저 해야 한다’고. 미래는 희미했고 내 개인적인 목표는 더 어렴풋했다. 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채 길을 궁리하며 남는 시간을 허비했다. 내 일상은 내면과 겉돌고 있었다.
쳇바퀴 같은 생활에 매듭을 지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렇게 상상했다. 당근을 눈 앞에 매달고 달리는 말. 분명한 일을 향해 달리다 보면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일이 윤곽을 드러내겠거니. 내 당근으로 마라톤은 어떨까. 마침 손병수 포브스코리아 대표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래, 달리자!’고 결심했다. 2003년 11월 중순이었다. 2004년 목표 중 하나로 풀코스 완주를 올렸다.
스스로 목표를 잡기는 몇 년 만이었다. 어디 보자. 한 권의 책을 쓰겠노라고 맘먹은 것은 1998년 겨울이었고. 기자가 되겠다고 결정한 때는 91년 봄. 기자 노릇을 하면서부터는 일을 쫓아가거나 일에 치여 지냈다. 이렇다 할 목표를 세운 적은 없었다. 하기야 기자에게 좋은 기사를 남보다 먼저 쓰는 것 외에 다른 목표가 있을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설렘도 오랜만에 되찾았다. 대회가 다가오면 마음이 들뜬다. 한 구석에서는 불안이 고개를 든다. 완주할 수 있을까. 기록을 단축할 수 있을까. 꼭 시험을 앞둔 심정이다. 나는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서는 어떤 시험에도 나를 들지 않게 했다.
이번 대회 기록은 4시간2분17초. 2주 전 춘천에서 세운 첫 기록보다 10분여를 단축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춘천과는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것이 그 때는 배를 곯는 악조건에서 뛰었다. 춘천 대회는 오전 11시에, 나 같은 초보는 11시20분에야 출발했다.
나는 땀을 덜 흘렸다. 손 대표가 “완주는 ‘깡’으로 가능하지만 기록은 땀방울의 결과”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뒷심이 달렸다. 컨디션이 괜찮아 내심 4시간 이내를 기대했다. 하지만 35km를 지나면서 발놀림이 둔해졌다. 나는 주로 밤에 아파트단지 주위나 한강 둔치를 달렸다. 대회 한달 전 3주 동안엔 주당 연습량을 60km 이상으로 늘렸다. 그러나 벼락치기엔 한계가 있었다.
마라톤은 과녁을 정하고 시위를 당기는 자세를 다시금 일깨워줬다. 이제 다른 ‘시험’을 치러나가야겠다. 포브스코리아에서의 목표도 구체적으로 정해야겠지. 마라톤은 그 모든 길목과 고비에서 내게 무한한 에너지원이 되리라 믿는다.
마라톤은 무한한 에너지의 원천
이상은 2004년 11월 초 사보에 쓴 마라톤 풀코스 완주기다. 서울에서 열린 대회에 나는 생애 두번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첫번째 완주는 글에서 쓴 대로 2주 전인 10월 말 춘천에서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04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까지 과정을 되짚어보면 몇 가지 조각만 스쳐 지나간다. 마라톤을 시작했다는 말에 반가워하며 주말 아침에 한강 둔치에서 나를 이끌어준 손호익 선배, 달리다 거리가 8km를 넘으면 왼쪽 무릎에 오던 묵지근한 통증, 15km 이상 달린 뒤 무릎이 아파서 계단을 비스듬이 걸어 내려오던 일, 첫 하프 대회 출전을 앞두고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겁이 나 저녁에 술 한잔 걸친 뒤 집으로 돌아와 뛰던 일, 그때 밤에 봄눈이 내렸는데 아파트 단지 둘레를 돌다가 속이 출렁거리고 울렁거려서 게운 일…. 손호익 선배가 준 달리기용 반바지를 나는 아직도 입고 뛴다.
처음엔 어디에서 뛸지 고민했다. 달리기 연습한다고 한강 둔치까지 가는 일은 번거로웠다. 아파트 단지 둘레를 돌면 어떨까 생각했다. 문제는 달린 거리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한강 둔치에는 거리 표지판이 서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뛴 시간만 기록할 수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 자동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거리계로 측정하니 1.5km였다. 네 바퀴 돌면 6km. 나는 한번 나가면 네 바퀴나 여섯 바퀴 돌았다.
기억은 기록에 미치지 못한다. 나는 수첩을 뒤져봤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때 달리기에 대해 거의 적지 않았다. 1월 30일 러닝화를 구입했고 3월 1일 생애 첫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메모 정도밖에 없다. 첫 하프는 무척 힘들었다. 곁에서 손호익 선배가 구령을 붙였고 나는 아마 우스꽝스럽게도 심각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한발 한발 이어갔다.
이 글을 다시 보니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만 안다. 우선 기록이다. 춘천에서보다 서울에서 기록이 좋은 건 대회가 열리는 시간대 덕분이 아니다. 춘천은 오르막 내리막 구간이 많아 기록을 내기 불리하다. 춘천 마라톤은 서울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비해 10분 정도 더 걸린다.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 지난해 내가 맨발로 달린 기록도 이 시차를 보여준다. 춘천에서는 4시간 15분이었고, 서울에서는 4시간 6분이었다.
설렘은 9년 전에 비해 덜해졌다. 마라톤 대회 날이면 언제나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욕심과 부족한 훈련량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교차한다. 훈련량은 늘 부족하지만, 대개 욕심이 앞선다. 기록을 경신할지 모른다는 기대에 들뜨곤 한다. 골인 지점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겸손해진다. 욕심은 점차 줄어들었다. 완주 후 부진한 기록에 허탈해하는 정도 또한 누그러졌다.
마라톤이 내게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이후에 책을 두 권 더 썼다. 담배를 끊었다. 술을 더 잘 마시면서도 숙취에 덜 시달리게 됐다. 그리고 음…, 국내 첫 맨발 마라토너가 됐다.
인간은 달리는 존재다. 달리기 시작한 존재가 인간이 됐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달린다. 나는 맨발로 뛴다. 맨발로 뛰면서 맨 처음 인간으로 돌아간다. 맨 처음 인간의 에너지를 들이마신다.

등록정보 : 서울 아02085 | 등록일 : 2012년 4월 20일 | 발행인/편집인: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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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자님 글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국내에 맨발달리기를 알리시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좀 걸리는게 과연 백기자님이 국내 첫번째 맨발 마라토너가 맞는지요.?. 제가 이리저리 주워 들은 바로는 국내에 맨발 마라토너가 몇분계시는데..예로 올 동아마라톤에서 서브3 하신분도 있고 맨발달리기 카페지기를 하시는 분도 경력이 꽤 있으신 듯 합니다…
네,
‘국내 최초 맨발 마라토너’는 관심을 끌어 맨발 달리기를 전파하려고 택한 표현입니다.
논란을 벌일 뜻은 없습니다.
제가 맨발 마라토너 1세대쯤 되겠지요. 맨발 마라토너 모임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관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