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시대를 거쳐 파산상태에 빠진 미국
1920년대부터 바야흐로 미국의 시대가 열립니다. 모건이나 밴더빌트 같은 기업가들이 결국 남북전쟁의 실속을 챙겼듯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통해 가장 실속을 챙긴 나라는 1917년 뒤늦게 참전해 연합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한 미국이었습니다. 유럽은 쇠퇴하고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제일의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합니다. 미국은 전시에 억압됐던 주택경기와 소비재산업을 부흥시키며서 놀라운 번영을 구가합니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토지투기붐이 일고 주식시장은 과열로 치달았습니다. 플로리다에서는 부동산을 산 사람이 그 자리에서 되팔아 열 배를 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사단이 나고야 마는데,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세계대공황이 촉발됩니다.
도처에 분노와 절망이 팽배하던 1932년, 후버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민주당 루스벨트의 ‘뉴딜(New Deal) 정책’이 그 대변환의 기폭제였습니다. 루스벨트는 취임 직후 은행의 겸업이 주식시장의 취약성을 고조시켰다면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겸업을 금지하고, 빈민들과 청년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각종 구호사업을 시행합니다.
미국 경제사회의 근간을 바꾸는 정책들도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1933년 6월의 전국산업부흥법(NIRA)입니다. 과잉생산과 기업간 과잉경쟁, 실업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산업부흥법은 각 산업이 공정경쟁 규약을 만들어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하도록 권고합니다. 이 과정에서 루스벨트는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해 줍니다. 이는 그동안 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일관했던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노조를 중요한 사회세력으로 인정한 조치로, 미국 전체 역사로도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1920년대만 해도 소득세 상한선은 24퍼센트였고, 상속세도 2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루스벨트는 첫 번째 임기 때 소득세 상한선을 63퍼센트까지 끌어올렸고, 두 번째 임기에는 79퍼센트까지 올렸습니다. 이와 함께 경기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빚을 내서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재정적자 정책에도 공을 들입니다.
GM에게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미국 정부는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새벽,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마비시킨 일본의 진주만공습 직후 선전포고를 하며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뉴딜정책의 국가통제 개념을 더 강화되고, 미군은 물론 영국군과 소련군에게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기업은 밤낮으로 쉴새없이 돌아갔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거대한 공장이었습니다.
‘타협의 시대’ 도래에 뉴딜정책이 기여한 본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용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양보를 받아들이게 하고, 그런 양보를 통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그래서 대량소비 체제로 통합시킨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부와 업계의 실질적인 협력입니다. ‘제너럴모터스에게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고, 미국에 좋은 것은 제너럴모터스에게도 좋다’는 인식의 확산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타협은 이해세력간 정치적 타협, 정확하게 말하면 노동과 자본의 계급적 타협입니다.
평생의 시간을 팔아넘긴 보금자리
정치적 기획으로서 ‘타협의 시대’가 구성원들에게 부여하는 삶의 본질은 찰스 핸디의 출사표에도 등장하는 ‘평생의 시간을 팔아넘긴 보금자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수십 년 전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지금도 진행중인 우리 삶의 본질입니다.
그러하면 우리는 평생이 시간을 팔아넘긴 보금자리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이 보금자리의 정체를 밝히는 첫 번째 열쇠는 관료주의입니다. 타협의 시대를 관통하는 질서는 정치적 영역이든 민간기업의 영역이든 관료주의입니다.
표준화된 소품종 대량생산은 어떤 제품을 얼마나 생산할지, 어떤 가격에 팔지가 이미 수개월 전 혹은 수년 전에 확정되어야 합니다. 계획된 생산은 돌발변수 없이 일사불란하게 집행되어야 하고, 만들어진 물건은 또 계획대로 시장에서 팔려야 합니다. 주요 제품에는 담당사업부가 있고, 업무는 표준화된 절차를 따라 진행됩니다.
기업은 이런 피라미드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호봉제와 승진제라는 규격화된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회사와 나의 관계를 영원하고, 회사에 충성하면 회사가 나를 돌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회사 또한 이런 생각을 권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평생의 시간을 팔아넘겼고 그 대가로 보금자리를 얻었습니다.
보금자리의 정체를 밝히는 두 번째 열쇠는 대중소비사회입니다. 관료주의가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대신 자유와 개성을 억압한 것처럼, 타협의 시대 대중소비사회는 넉넉한 소비를 제공하는 대가로 순응과 동질화를 요구합니다.
대량으로 보급되는 문화와 상품 그리고 욕망을 비슷하게 소비하며 살아갑니다. 이들에게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었다면 그건 집단에서 벗어나는 것, 공통된 욕망에서 이탈해 내면의 욕망에 솔직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저항하고 바꾸려 하기 보다 순종적인 소시민으로 변해갑니다.
*편집자주 : 이 칼럼의 전문은 알투스에서 펴낸『죽음의 계곡』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연재된 칼럼은 옆 링크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eroun.net/author/bryu)
아무도 떠나지 않기에, 누구도 떠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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