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달리기]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사람은 원래 맨발로 달렸다.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맨발 달리기의 그 자연스러움에 대해 길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은,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려한다.
2부: 러닝화의 매트릭스에서 탈출하라 – ⑤ 빨리 달리려면 제자리에서 뛰자
높이뛰기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틈나는 대로 폴짝폴짝 뛰면 점프력이 향상될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운동선수 중 역도선수가 서전트 점프, 즉 제자리 높이뛰기를 가장 잘 한다는 것이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이 1990년 무렵 국가대표 선수의 체력지수 최고치를 측정한 결과다. 손 쥐는 힘은 왼손에서는 유도의 하형주 선수가 90.5kg으로 가장 강했고, 오른손은 씨름의 유홍렬 선수가 99.9kg으로 최고였다. 서전트 점프는 역도의 최병찬 선수가 98cm로 1위에 올랐다. 20대 일반인의 서전트 점프가 약 50cm인 데 비해 두 배를 뛰어오른 것이다.
얼마 전에는 1985년생인 역도선수 사재혁 씨가 TV에 나와 1m에 육박하는 서전트 점프력을 자랑했다. 키 168cm에 몸무게 80kg인 사 선수는 “몇 년 전에는 서전트 점프 1m를 했다”고 말했다.
농구나 배구 선수처럼 키가 크지 않고 높이뛰기 선수처럼 날렵하지도 않은 역도 선수가 가장 높이 뛰는 비결은 뭘까? 먼저 사재혁 선수의 기록을 보자. 사 선수는 인상에서 최고 165kg을, 용상에서는 211kg까지 들었다. 체중의 2.5배까지 들어올린 것이다. 육중한 바벨을 이겨내고 몇 초 이내에 무릎을 펴 일어서려면 다리가 강한 힘을 폭발적으로 뿜어내야 한다. 역도에서 다리를 펴는 동작은 땅을 박차고 몸을 솟구치는 것과 메커니즘이 같다. 역도선수가 바벨을 들지 않은 상태에서 이 동작을 취하면 바로 서전트 점프가 된다. 역도 선수 다리에 장착된 강력한 폭발력은 높이에 반영된다. 점프력을 키우고 싶은가? 바벨을 어깨에 지고 스쿼트 훈련을 하면 좋다.
맨발 달리기 이야기를 연재하다 난데없이 웬 높이뛰기인가? 의아하게 여길 독자가 많으리라. 높이뛰기를 잘 하기 위한 훈련 방법은 잘 달리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지 힌트를 준다.
역도 선수가 가장 높이 뛰는 것처럼
꾸준히 많이 들리면 분명히 기록이 좋아진다. 그러나 달리기의 핵심을 가다듬고 강화하는 훈련을 하면 무턱대고 많이 뛰는 데 비해 기록을 더 효율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나는 풀코스 기록이 완주자 중 중간 정도다. 하지만 맨발로 뛰면서 달리기의 본질을 알게 됐다고 자부한다. 나는 많은 자료를 섭렵하면서 맨발 달리기의 원리에 바탕을 둔 훈련법을 접하게 됐다.
달려본 적이 거의 없던 소년 W.G. 조지는 단 한가지 훈련으로 당대 최고의 달리기 선수가 됐다. 그는 100업(up)이라고 이름 붙인 훈련법을 16세 때인 1874년에 개발했다. 그때 그는 약제사의 조수로 일했고 점심시간에만 100업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훈련에 돌입한 지 2년차에 그는 영국에서 가장 빠른 아마추어 선수가 됐다. 5년차에는 반 마일에서부터 10마일까지 모든 종목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하기에 이른다.
100업은 두 동작이다. 첫째 동작은 정적이다. 두 발을 20cm 간격으로 벌리고 선다. 한쪽 다리를 들어 무릎이 엉덩이 높이까지 오도록 한다. 다리를 내려 발로 디뎠던 지점을 찍은 뒤 같은 움직임을 반복한다. 팔은 달리는 때처럼 움직인다. 한쪽 다리를 100번 든 뒤 다른 다리를 100번 든다. 둘째는 제자리뛰기다. 이때에도 무릎을 엉덩이 높이까지 올린다. 주의할 점은 발 앞부분으로만 디딘다는 것이다. 뒤꿈치가 땅에 닿으면 안 된다.
스쿼트가 점프력을 키워준다면, 100업은 달리기의 본질을 자극하는 훈련이다. 발 아치와 아킬레스건의 탄력을 키우는 데 제자리뛰기만큼 효과적인 훈련은 드물다. 발 앞부분에 수직으로 실린 체중을 받아내며 반발력으로 되살리는 동작이 발 아치와 아킬레스건을 강하게 단련한다. 제자리뛰기를 해본 사람은 이 동작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안다. 제자리뛰기는 무릎을 들어올리는 동작과 발로 땅을 차서 반발력을 얻는 동작이 결합된 운동이다.
제자리뛰기처럼 발 아치와 아킬레스건을 단련하는 방법이 맨발 줄넘기다. 맨발 줄넘기는 체중이 많이 나가거나 무릎 관절이 약한 사람에게 권한다. 제자리뛰기는 착지 충격을 한쪽 발로 받는 반면 맨발 줄넘기는 두 발을 동시에 디디기 때문에 한 발이 부담하는 충격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제자리뛰기보다 강한 훈련은 앙감질
제자리뛰기보다 발 아치와 아킬레스건 강화에 좋은 훈련은 없을까? 제자리뛰기가 맨발 줄넘기보다 힘든 건 한쪽 발로 착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자리뛰기보다 더 힘든 동작은 한쪽 발로 여러 번 계속 디디는 것이다. 한쪽 발로 제자리 뛰기, 이름을 붙이자면 제자리 앙감질이 발 아치와 아킬레스건 강화에 가장 효과적이다. 앙감질하며 노는 ‘오징어’ 같은 놀이가 달리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나는 지난해 가을 맨발로 뛰는 훈련에 앙감질도 포함했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러그를 깔아놓고 제자리뛰기를 하다가 시간 대비 효과를 키우기 위해 앙감질 훈련으로 바꿨다. 그러나 앙감질은 이내 중단했다. 체중이 제법 나가는 상태에서 하는 앙감질은 관절에 무리를 주는 듯했다. 이제 발 아치와 아킬레스건 탄력이 풀코스를 완주할 정도로 강해진 만큼 다시 앙감질 훈련을 시도해볼까 생각 중이다.
제자리 앙감질은 우리 몸과 달리기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망외소득으로 내게 선사했다. 독자께서는 바지를 입을 때 어느 쪽 다리부터 넣으시는가. 대개 오른손잡이는 오른쪽 다리 먼저, 왼손잡이는 왼쪽다리부터 넣는다.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한참 전에 오른손잡이로 고쳐졌다. 밥상에서부터 오른손을 주로 쓰도록 배웠고, 그래서 이후에 글씨를 쓰거나 공을 던지거나 손이나 팔을 움직이는 동작 대부분은 오른손 오른팔로 하게 됐다.
그렇지만 무의식중에 하는 여러가지 동작에서는 숨어있던 왼손잡이가 나온다. 운전을 배울 때였다. 조수석에 앉은 강사는 내가 핸들을 돌리는 모습을 보더니 “왼손잡이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왼손과 왼팔을 많이 움직이는 듯하다. 내가 팔씨름에서 왼팔이 상대적으로 강한 걸 보면 그런 것 같다. 바지를 입을 때처럼 남을 의식하지 않는 때면 나는 본래의 나인 왼손잡이가 된다. 왼쪽 다리부터 집어넣는다. 공을 찰 때도 왼쪽 다리가 먼저 나간다.
트랙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이유
나는 지금 바지 입는 순서로 좌우를 가르려는 게 아니다. 오른손잡이에게는 오른쪽 다리가 우선이다.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에 양보한다. 묵묵히 지탱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보니 오른손잡이는 왼쪽 다리가 더 굵고 튼튼하다. 왼손잡이는 반대다. 체중계 두 개를 나란히 놓고 한 발씩 디디고 서면 두 체중계가 각각 우리 몸무게의 절반을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른손잡이는 왼쪽이 조금 더 나온다고 한다. 왼쪽 다리가 더 굵어서다.
100업 훈련이 강하게 하는 근육이 장요근이다. 장요근은 장골근과 대요근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우리말로는 엉덩허리근이라고 한다. 대요근은 열둘째 등뼈, 그러니까 배꼽보다 윗부분에 있는 척추와 허리뼈에서 뻗어 내려와 넙다리뼈에 붙는다. 장골근은 엉덩뼈오목, 엉덩뼈능선 등에서 뻗어 내려와, 대요근과 함께 넙다리뼈에 닿는다.
장요근은 엉덩관절에서 다리를 굽히는 데 작용한다. 서서 몸통을 굽히는 데도 작용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몸통의 균형을 잡아준다. 선 상태에서 몸이 뒤로 기울어질 경우 장요근이 긴장한다.
장요근은 인류가 직립주행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네발 동물도 장요근이 있지만 인류의 장요근만큼 이동에서 큰 기능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네발 동물의 달리기에서는 뒷발로 차는 동작이 핵심이다. 강하게 차서 추진력을 얻은 다음 앞발로 착지할 때까지 뒷다리를 당겨온다. 뒷발을 디딘 뒤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인간은 다리를 앞으로 끌어당기고 위로 올리면서 달린다. 착지할 때는 땅을 박차는 대신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에 몸을 맡겨 반발력을 얻는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근육이 바로 장요근이다. 대퇴직근도 골반에서 비롯해 다리를 들어올리는 동작을 돕지만, 상체와 하체를 연결하면서 다리를 들어올리는 힘은 주로 장요근이 낸다.
장요근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래서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보디빌더계의 전설 아놀드 수워제네거는 822쪽에 이르는 <보디빌딩 백과>를 썼지만 그 두꺼운 책 어디에서도 장요근을 따로 떼어내 설명하지 않는다. “윗몸일으키기를 많이 하면 복근이 아니라 장요근이 강해진다”는 정도다.
100업에서 무릎을 들어올리는 동작이 장요근을 강하게 하는 훈련이다. 달리기는 다리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장요근 같은 체간근육을 써야 한다.
직립주행의 핵심 장요근을 아시나요
국내에서는 장요근이 덜 알려졌다. 인터넷에는 주로 장요근 수축을 막기 위한 스트레칭 얘기가 실려 있다. 달리기 선진국인 일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장요근의 중요성을 깨닫고 운동법을 전파하고 있다. 다음을 일본 달리기 매거진 ‘러너스’의 2004년 11월호에 실린 기사다. 인터넷에서 찾은 내용을 요약한다.
- 마라톤에서 30km 이후에 페이스가 떨어지는 이유는 훈련 부족, 전반의 오버페이스, 에너지의 고갈 등 다양하다. 그러나 달리는 수준을 불문하고 많은 주자에 있어 후반 페이스 저하의 공통 원인은 상체에서 생긴 힘을 지면에 전달하지 않고 다리의 힘에만 의존해 달리는 것이다.
- 하프 마라톤이라면 다리만 사용하더라도 어떻게든 달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풀코스 마라톤에서는 도중에 다리 근육에 한계가 오기 때문에 다리가 무거워지고 30km 이후엔 속도가 떨어진다. 다리의 힘에만 의존해 달리는 것을 개선하려면 내부 근육인 장요근을 사용해야 한다.
- 장요근은 상반신에서 생긴 힘을 전방으로의 추진력으로 해서 하반신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장요근을 잘 쓰면 다리 근육에 부담이 덜 해 30km 이후에도 다리를 가볍게 유지할 수 있다.
나는 100업을 알기 전인 2009년에 스스로 장요근 강화법을 개발했다. 내가 개발한 장요근 강화 운동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이다. 다리를 들어올리고 내릴 때엔 허벅다리와 종아리를 붙여야 한다. 그래야 장요근에 하중이 충분히 간다. 위로 올리는 동작만 반복하면 허리에 무리가 간다. 배가 많이 나오면 그 무게가 허리에 부담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반대편 동작을 같은 회수만큼 병행하는 게 좋다. 위로 올리는 동작을 10회 했다면 뒤로 밀기도 10회 반복하는 것이다.
처음엔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한쪽 손을 어디에 지탱하고 운동하면 좋다. 익숙해지면 손을 아무 데도 대지 않고 수십회를 반복하는 게 가능해진다. 하다 보면 지탱하는 다리의 근육도 제법 운동이 됨을 느낄 수 있다.
달리기 기량은 연습량에 비례한다. 탑을 높이 쌓으려면 기단부가 넓어야 한다. 기단부는 연습량이다. 장요근 강화운동과 100업을 꾸준히 하면 기단부가 같을 때 남보다 탑을 높게 올릴 수 있다.
참고 자료
운동, 끝없는 공간이동, 김태일, 성우, 2002
The Once and Future Way to Run, NewYork Times, 2011.11.2
밤에 먹으면 살찌는 이유, 과학동아 편집실, 성우,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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