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상한 상식이 전 세계에 ‘이상한 나라의 경제’를 구축했다. 이상한 상식은 결국 이 이상한 경제 체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상한 나라 안에 있을 때는 그 나라가 얼마나 이상한지 깨닫지 못한다. 숲 밖으로 잠깐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월가에서 시작해서 세계로 번진 시장만능주의는 궁극의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신용카드 회사와 제조업체들의 탐욕은 전 세계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네오필리아(neophilia)’가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네오필리아는 새것을 오래된 것 보다 선호하는 경향이다.
현대인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 소비하려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기존 것이 충분히 좋더라도 말이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로부터 출발한 자본주의가 완성된다. 새로운 것을 소비함으로써 자아를 찾는 현대인에게, 시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산해 공급한다. 탐욕의 원리가 선이 되고, 인류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다.
개인의 사익 추구를 공익으로 전환하는 에덤 스미스의 논리로 출발한 자본주의는, 탐욕을 앞세운 금융과 기업을 거쳐 소비지상주의를 낳았다. 사람이 소비로 자아를 규정하고 행복을 실현시키려는 생활방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입증하는 방법까지 변화하게 됐다.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이, 더 새로운 것을 소비해야 한다.
문제는 더 있다.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더 좋은 물건을 더 많이 손에 넣으려고 더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끝까지 만족하지 못한다. 언제나 지금보다 더 좋고 더 크고 더 빠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소유와 욕구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커졌다. ’소비자를 불만족하게 해라‘는 GM 찰스 케터링의 전략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사람들이 더욱 괴로워지는 이유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해야 하는 일 때문이다. 과소비는 ‘괴로운 노동’과 한 쌍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잘 깨닫지 못한다. 더 많이 벌기 위해 하기 싫더라도 억지로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게 현대 사회의 규범이다.
사실 모든 사람이 노동시간을 줄이고 적성에 맞는 즐거운 일거리를 찾겠다고 나선다면, 더 만족스런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 굳이 고급 브랜드 농산물을 사기 위해 괴롭게 일할 시간에, 생산지에 가서 경작 방법을 직접 지켜보고 사거나 직접 작물을 키우면 된다. 기업들이 만들어준 정체성을 흡수하고 사고 체계까지 바꾸는 대신, 자신의 소비 패턴을 발견하고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
좀 소비하고 산다고 얼마나 문제가 생기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소비하는 즐거움으로 그 문제는 상쇄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의 숫자를 확인하고 나면 생각이 좀 바뀔 수도 있겠다. 노트북 한 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노트북 무게의 4천 배에 이른다. 전자제품 안에 들어가는 작은 칩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칩 무게의 수만 배에 이르는 쓰레기가 나온다. 이 제품들은 생산 과정에서 엄청난 자원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전자제품을 자꾸 바꾸는 이유가 소비자 내면으로부터 나온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노트북, 휴대전화, 자동차 등은 신용카드 같은 개인 소비용 금융 조달 기능이 사라진다면 지금처럼 빨리 교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들이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새것으로 바꾸라고 적극적으로 유혹하며 의도적으로 쓸 만한 제품을 낡은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래 제품을 사용할 것이다.
북미에서는 제품이 팔린 뒤 6개월이 지난 뒤 조사해봤더니, 투입된 원재료의 1%만이 여전히 제품에 포함되어 사람들에 의해 실제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통계가 있다. 북미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나라들에서도 이 수치는 100%가 되지 않는다. 엄청나게 큰 규모의 자원이 과생산 ·과소비로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많은 혁신이 낭비하는 가운데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계속 많이 사서 많이 즐길 수 있다면, 그렇게 계속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사는 이 소비 패턴이 인류가 직면한 두 개의 거대한 위기의 근원이라면? 오래 지속할 수 없고, 자의로든 타의로든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출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금융 위기가 표면화된 이후 세계 각국 정상들과 함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성명서를 하나 발표했다. 내용은 이렇다.
세계가 많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 해답은 함께 찾아야 한다. 오늘날 세계는 금융 위기와 기후 변화라는 양대 난관에 직면했는데 그 해결 방법은 바로 녹색 경제의 발전이다.
이를테면 태양열 에너지나 풍력 에너지 등의 새로운 저탄소 에너지원을 발굴하고 저탄소 산업과 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를 부양하고 대량의 일자리도 만들어낼 수 있는 ‘녹색 경제’에 해당한다.
‘녹색 경제의 발전’은 단순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실은 매우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가 1990년대 이후 추구해온 삶의 방식을 상당 부분 바꾸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결국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의 ‘번영’이 끝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말이다. 경제 체제가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전문은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어크로스 펴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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