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복점, 미군 맞춤에서 이태원 명소로

_ | 2012/04/25 | 탐방인터뷰



이태원은 일찍이 외국 문화에 익숙했다. 이태원(梨泰院)은 조선시대 ‘배나무 이(梨)’자와 여행자를 위한 역원의 원(院)이 붙어 유래한 지명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들,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모여 살던 동네로 다를 이(異), 태반 태(胎)를 써서 이태원(異胎圓)으로 불렀다는 해석도 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의 주거지였다.

6.25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하는 기지촌으로 재편됐다. 이태원 1동은 이태원 시장, 보광동 언덕길은 외인전용클럽, 보광초등학교 왼편에는 미군을 상대하는 한국 여성들이 혼재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군이 평택 등지로 철수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착하기 시작, 다국적 거주 공간의 모습을 띄었다. 외인주택단지와 허름한 판잣집은 부유층과 저소득층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게이바들이 들어섰다.

88 올림픽을 거치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었고 97년에는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퓨젼’과 ‘쇼핑’의 장소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음식, 골동품, 이색클럽 외에도 독특한 스타일과 다양한 수입 브랜드를 만나볼 수 있는 패션 가게들이 알려졌다. 비자 없이 누리는 이국성, 아픈 역사, 고가의 상류층 문화와 싼 집값에 기댄 소수자들이 혼재한 독특한 문화는 젊은층에게 올해 가수 UV의 ‘이태원 프리덤’ 붐을 일으켰다.

매년 가을 개최하는 ‘지구촌 축제’가 끝난 11월 3일 목요일 오전, 한산한 이태원 거리를 찾았다. 이태원역 4번출구에서 녹사평역 3번 출구에 이르는 이태원로는 패스트 푸드점에서 식사를 하는 미군들과 외국어 간판이 붙은 양복점, 큰 옷가게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이룬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조양복점 ‘cho’s custom tailor’ 간판이 반짝인다. 30년째 이태원 시장을 지킨 조태행 대표(63)가 객을 맞았다.


80년대 양복점은 “’1인 수출기업, 민간 외교관”
30년 전, 대동공업이라는 패션과 무관한 회사에 다니던 청년은 친척과의 연을 통해 우연히 양복점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는 1980년대였고 이태원은 섬유와 패션산업의 발달로 인해 ‘쇼핑메카’로 불리던 전성기였다. 미군들이 주둔하며 소비와 쾌락의 배출구로 유흥업소들이 들어섰다. 미국인의 체형에 맞춘 양장점, 큰 옷, 보세 제품 가게가 들어섰다. 미군들은 본국에 비해 싼 맞춤 양복에 매력을 느꼈다.

“미군들은 기성복에서 치수를 찾기 힘드니까 양복을 많이 맞춰 갔지. 한 번 오면 두 세벌은 기본이고 열 벌씩 맞춰 가는 사람들도 많았어. 그 때가 전성기였지. 이태원에서는 영어를 못하면 장사를 못하기 때문에, 민간 외교관이나 다름 없었지. 그 때만 해도 내가 달러를 벌면서 1인 수출기업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어”

요즘에는 동대문, 남대문 시장에서도 영어를 많이 한다고 하지만 옛날에는 이태원만 영어가 통했다. 외국 사람들에게 ‘서울은 몰라도 이태원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국제 공무원들도 먼저 들렀다 가는 곳이 이태원이었다. 달러 보호 정책으로 환전소가 불법이었던 시절. 주말에 외박을 나온 미군들이 몇 벌씩 양복을 맞춰 가면 ‘몇 천불은 우습게 들어오곤 했었다.’고 조 대표는 회상한다.

당시에는 이태원에만 100개 정도의 양복점이 있었다. 초창기에는 조양복점도 직영 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양복점 하나당 공장 하나를 가지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고 수요가 줄면서 자기 공장을 가지면 수지 타산이 안맞았다. 일명 ‘도로시’라고 하는 하청 업체에서 양복점 두 세군데가 함께 공장 하나를 운영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실버 세대 맞춤양복, 이태원 관광 명소로
현재는 대부분 없어지고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하락 추세를 걷고 있는 실정. 최근 미국금융사태와 용산미군기지 평택 이전도 불황에 큰 몫을 했다. 공장에서 맞춤 양복을 제작하는 인력도 양복점과 시작을 함께 한 6~70대 사람들이다. “요즘 사람들은 돈벌이가 안돼서 안하지. 젊은이들 후대 양성이 안 되고 있어. 이 사람들이 그만두면 없어지는 거야.”라고 조 대표는 말한다.

맞춤 양복을 만드는 데는 상의, 하의, 재단사, 마무리, 디자이너까지 최소한 5~6명이 필요하다. 손님이 방문해 매장에서 사이즈를 재고, 원단을 고르고, 스타일을 맞춘 다음 주문을 보낸다. 주문대로 시장 내 공장에서 가봉을 하면, 고객이 입어 보고 조정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가봉 과정을 거쳐 완성까지 최소 3일부터 최대 7일 정도 걸리고 손님은 3번 정도 방문을 해야 한다. 하나하나 정성이 들어간 과정이다.

맞춤 양복은 단골층이 있고, 기성복에서 치수를 찾기 힘든 외국인이나 특별한 체형을 가진 사람 등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한 벌만 팔아도 단가가 나쁘지 않아 마진이 남는 편이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은 본국에서 맞춤양복을 흔하게 볼 수 있는 문화가 아니라서, 자신의 치수와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맞춤 양복을 흥미로워한다. 여전히 2-30만원대로 저렴한 가격은 고객 매력 요인이다.

주 고객층은 각국 대사관이나 외국계 금융기관 직원들부터 시작해 관광객까지 다양하다. 외국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다 보니 관광을 위해 잠깐 한국에 들러도 꼭 가야할 명소가 되었다는 것이 조 대표의 자랑. 2015년까지 용산에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확정되면서, 이태원 쇼핑 단지 등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상권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지 않을까하는, 조 대표의 바람이다.

문의) 02-798-0601 / tailor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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